한국의 근현대를 조명하는 대표적 소설을 꼽으라면 토지와 태백산맥을 거론함이 당연할 것이다.

토지는 1800년 말부터 일제 강점기를 거쳐 광복때까지 조선인들의 삶과 역사를 다뤘는데, 지금은 어디가서 듣기도 힘든 담백한 사투리와 맛깔난 문장들로 당시의 시대상와 인간 군상들을 잘 표현해낸 것이 기억에 남는다. 특히 사전을 따로 봐야만 알 수 있는 사투리들을 하나하나 찾아가며 읽는 맛이 제법 쏠쏠했었다.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 사투리라면 "이녘"이라는 단어인데,  들녘, 해질녘과 같은 뉘앙스가 풍겨서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감이 잘 안잡혔던 단어이다. 작년인가 제주도에 갔을때 그곳에서도 "이녘"이라는 말을 쓰는걸 보고 이 말이 제주도 방언인가... 의아했는데 아직도 궁금증을 풀지 못하고 있다.

다양한 방언들이 주는 아기자기한 재미들도 있지만 숨막히는 격변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전설처럼 느껴졌었다. 겪어보지 못한 과거, 하지만 그리 멀지도 않은 불과 백여년 전의 일이건만 시대에 휩쓸리며 모질게도 살아가는 인간들의 모습이 지금과는 사뭇 다르기에 소설에서 눈을 떼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태백산맥은 광복 이후부터 6.25 전쟁까지를 다뤘는데 이념대립이 극심해지며 민족이 갈라지는 가슴아픈 역사를 매우 섬세하고 직설적인 묘사로 다룬 것이 인상적이다. 특히 서슬 퍼렇던 80년도 군사정권 시기에, 말도 함부로 내뱉지 못했던 그 숨막히던 시대에 이런 작품을 완성했다는 것이 태백산맥을 더욱더 돋보이게 하는게 아닐까...

이후에 작가가 십년 가까이 국가보안법 혐의로 수사와 재판을 받고 물론 그 이전부터 테러 협박과 수많은 압력도 있었지만 이런 척박한 환경속에서 끝내 대작을 마무리 지었다는 점이 참으로 존경스럽다.


그나저나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잘 알려져서 검색만 해봐도 관련 글이 수없이 쏟아지는 토지와 태백산맥을 굳이 거론하는 이유는 다른데에 있다.

1900년도, 1950년도를 배경으로한 대작이 나왔다면 2000년도에 걸맞는 무언가가 나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때문이다. 격변의 한국 근현대사가 위대한 걸작의 탄생에 밑거름이 된 점을 감안하면 지금 21세기에 걸맞는, 또는 21세기 한국 사회를 대변할 작품이 나올법하지 않을까?

60년도 경제 성장기를 거쳐서 IMF를 지나 고도의 자본주의 체제로 접어든 한국의 상황, 고착화 되어가는 분단, 가치의 대충돌, 그리고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모습들, 너무나도 일상적인 모습들.

문학이란게 물론 요즘 잘팔린다는 일본 소설들처럼 간질간질한 그런 감성적인 것들도 물론 의미가 있지만 그래도 역시 문학은 그 시대상을 반영하는 그런 작품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글재주가 뛰어나다면 목숨걸고 한 번 써보고 싶다는 그런 생각을 안해본 것은 아니지만 단편 소설 하나 써본적 없고 어디가서 전문적으로 글쓰는 훈련, 교육, 경험도 없기에 그저 또다른 대작이 어디선가 열심히 쓰여지고 있지 않을까... 기대만 할 뿐이다.

그리고 만일 그런 대작이 또 나온다면 지금 이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 나의 모습일수도 있고 부모의 모습일 수도 있을테니 더욱더 공감을 할 수 있을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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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ye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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