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유라시아 대륙에서 활약했던 유목 민족들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제국을 일으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네들의 과거를 서술한 책이다.

유목 민족이라면 우리나라의 제도 교육에서 나오던 선비, 거란족, 여진족, 몽고족 등을 말하는데, 이 외에도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질러 유럽으로 이동하여 유럽사에 끼친 흉노(훈) 등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옮겨다니며 발자취를 남긴 민족들을 말한다.



유목민이라고는 했지만 이 책에서는 이들을 일관되게 “야만인"이라고 말하고 있다.

유럽, 아시아, 중동 등지에서 대체로 비슷한 시기에 문명이 발달한 것과 달리 “만주에서 부다페스트를 거쳐 중앙 유라시아의 북장을 가로지르는 넓은 지역, 즉 초원지대였고 그 북방의 끝은 시베리아의 삼림과 맞닿아있는(p.11)" 곳에서 유목 생활을 하며 정주민이 일군 문명 사회에 이방인으로서, 또는 침략을 일삼는, 그런 의미의 야만인으로 묘사되고 있다.


물론 저자 서언에서는
그곳에 살던 사람들이 다른 인류에 비해 열등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라고 주의를 주고 있지만, 책의 곳곳에서 문화 우월주의 관점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고 역자들이 각주를 붙여서 이를 지적하고 있기도 하다.

이 책을 쓴 르네그루세가 거침없고 활달했던(물론, 그 구체적인 형태는 침략과 약탈, 점령이지만 오늘날 역사를 돌아봐도 형태만 다를 뿐 그 본질은 동일하지 않은가) 유목민을 “야만인"으로 부르는 것은, 번역의 문제가 아니라면, 그네들 스스로 오늘날까지 내세울만한 문명을 세우고 남기지 못한 현실 인식이 반영된게 아닌가 싶다.

확실히 이 책에서는 유목민들의 역사를 기록함에 있어서, 이들을 둘러싼 소위 문명 지역들, 유럽, 중국, 인도, 이란(중동 이슬람 문명)의 문헌을 주로 다루고 있다. 즉, 유목민 스스로가 남긴 역사 기록이 아닌 1300년간 지속된 유목 민족의 침략에 시달리던 문명 지역의 역사 기록이 압도적으로 많다보니 오늘날까지도 “야만인"으로 규정되는 모습은 피할 길이 없어보인다.

그럼에도 이 책이 놀라운 것은 수십년 전에 동양과 서양의 문헌에 남아있는 역사의 파편 조각들을 집대성해서 유목민의 역사를 재구성해냈다는 것이다. 이 분야 전문가가 아닌 순수한 일반 독자이다보니 이 책의 학술적 가치랄까...  미시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수는 없으나  “민족들의 자궁(vagina gentium)” 이라고 표현한 통찰력은 깊이 공감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유목민이 유목민의 정신을 버리지 않는 한 그는 정주민을 마치 자신이 부리는 농사꾼처럼 여겼고 도시와 경작지는 그의 농장이었으며...... 고대 제국들의 변방을 넘나들면서 비교적 순순히 말을 듣는 사람들로부터는 정기적인 공납을 받아냈고, 공납을 거부하는 경우에는 도시를 급습하였다...... 휘하의 유목집단을 제국적 연맹체라고 선포하고.... 한 두 세대가 지난 뒤 그의 손자들은 도약을 할 정도로 충분히 중국적인 형식을 갖추게 되고 떳떳하게 천자의 권좌에 오른 것이다.....

그 뒤 다시 2-3세대가 지나면서 야만적 기질의 엄격함을 보존하지 못한 채 문명으로부터 단지 연약함과 폐단만을 배우게 된 이 중국화된 야만인들은 도리어 모멸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그들의 영토는 고향의 초원 깊숙한 곳에서 빈곤한 유목민으로 남아 있떤 다른 야만인들이 탐내는 대상이 되어버린다. 그렇게 해서 과정은 되풀이되었다...(p.30~p.31 서론:초원과 역사)

책은 총 3부로 되어 있고 맨 뒤에 <찾아보기>까지 합하면 800페이지가 넘는다. 책의 두께도 두께지만 그 내용 자체가 일반 대중에게 생소한데다, 1300년간 명멸해온 수많은 유목민족들에 대해 다루다보니 한 번에 소화하기는 힘들어보인다.

특히나, 여기저기서 툭툭 튀어나오는 각종 지명은 최소한 지리적 배경 지식이 없다면 책을 읽는데 지루해지지 않을까 싶은데, 개인적으로 구글지도를 “적극" 활용해가면서 책을 읽다보니 의외의 재미를 느낄 수가 있었다.

도서 반납때문에 1부(13세기까지의 유라시아 초원 세계)까지밖에 읽지 못했는데, 구글 지도를 참고해가면서 유목민족, 제국들의 역사적인 흐름을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정보량이 많다.

아래는 이 책에서 짚어본 몇몇 대목들이다.
1300년간이나 지속되어온 유목민족들의 문명 지역에 대한 진출에 대해서 이 책에서는 "물질 문화에서는 뒤처졌지만" 압도적인 군사적 우위로 정주민들의 문명 사회를 흔들어놓았음을 말한다.

중국인 이란인, 러시아인 폴란드인 헝가리인은 이 점에서 몽골인과는 결코 맞수가 될 수 없었다. 어려서부터 광활한 초원을 뛰어다니는 사슴을 모는 것에 훈련이 되어 있었고, 침착한 접근과 사냥꾼에세 필요한 각종 기술에 익숙해진 그들은 무적이었다..... 초원의 기마궁사, 그것은 토지 그 자체의 자연스러운 결과이고 배고픔과 가난함의 소산이며 유목민이 굶주림의 나날에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1300년 동안이나 유라시아에서 군림하였다.(p.14)

그러나 이러한 군사적 우위는 화약의 발명과 함께 대포와 같은 무기로 인해 순식간에 뒤바뀌게 됨으로써 천 년 넘게 이어져온 유목민의 역사가 종지부를 찍었다고 보고 있다.

어떻게 해서 16세기부터 시작하여 유목민은 정주민들을 더 이상 자기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된 것일까? ... 총포로 맞서게 되었고 ... 하루아침에 인위적인 우위를 획득하게 된 데에 있다... 대포는 세계사에서 한 시대의 종지부를 찍었다... 처음으로 그리고 영원히 군사기술이 다른 편으로 넘어갔고 문명이 야만보다 더 강해진 것이다...(p.15)

아마 저자가 제국주의가 횡행하던 당시의 분위기에서 결코 자유롭지는 못했으리라고 보기 때문에, 이 책을 쓸 때 유목민족들의 역사를 조명하하고 재구성하면서 여유로운 시각을 견지할 수 있었지 않을까....

서양이 동양에 대해 모든 면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던 당시의 상황이니만치, "1300년이나 세계를 흔들었던 유목민족들이 결국은 군사력에서 뒤처졌기에 사라졌다"는 저자의 통찰이 타당해보이기는 하나 온전히 받아들이기는 좀 꺼림칙한 면이 있다.

마치 서양의 선교사들 눈에 미개해 보이는 부족들을 교화하고, 안된다면 힘으로라도 자신들의 질서에 편입시켰던 역사, 그런 시각이 진득하게 베어있다는게 느껴진다.

아무튼 가려볼 대목을 가려본다면 유목민족들의 활달하고 기백넘치는(?) 모습을 간접적으로 느껴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관련 책들>
유라시아 초원제국의 역사와 민속』, 박원길, 민속원, 2001
『터키사』, 이희수, 대한교과서주식회사, 1999
『유목민이 본 세계사』, 스기야마 마사아키, 학민사, 2000
『고조선과 고구려 역사를 다시 본다』, 김상천, 도서출판 주류성, 2003
「고조선과 우리민족의 정체성」, 서영수, 백산학보 제65호, 2003
「게르만 민족 대이동을 촉발시킨 훈족과 한민족의 친연성(親緣性)에 관한 연구」, 이종호, 백산학보 제66호, 2003
「고구려와 흉노의 친연성(親緣性)에 관한 연구」, 이종호, 백산학보 제67호, 2003
「고조선의 영역과 그 변천」, 주법종, 한국사론 34, 2002
Posted by ye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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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불방총각
    2014.10.27 14:24

    좋은글 잘 봤습니다. 지금 이 책을 읽고 있는 시민1 입니다. 현재 거란족 초입 부분을 읽고 있는데, 본문 내용과 같이 저자가 조금의 우월성?을 느끼고 서술하고 있다는 느낌을 조금 받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 야만인 ' 을 진짜 ' 야만인 ' 이라고 표현한 것이 아니라 달리 표현할 방법을 찾지 못해서 굳이 ' 야만인 ' 이라고 표현하는 듯한 , 뭐랄까요.. 제가 원문을 안 봐서 ( 봐도 뭐 읽지도 못하겠지만 ) 잘은 모르겠지만 , 듯한 이미지가 그려지네요. 무튼 ' 가려볼 대목을 가려 본다면 ' 부분에 강조해서 동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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