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대생들에게 들려준 한국사 - 10점
이태진 지음/태학사

서울대 이태진 교수님의 "동경대생들에게 들려준 한국사(태학사,2005/08/31)" 라는 책의 특별 강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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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세력이 오기 전의 동아시아의 각국의 중화주의

현재 동아시아 국가들 간에 일어나고 있는 역사분쟁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 300년 정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볼 필요가 있다.

중국 중심의 조공책봉체재(朝貢冊封體制)는 동아시아의 전통적 국제질서의 대명사나 마찬가지다. 이를 부정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중국 천자가 주변 나라들의 왕위를 책봉하는 형식을 통해 각 국가의 존재가 인정되고 공존관계가 성립, 유지되었다. 주로 평화시대의 국제질서로 가능한 체제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체제는 북방민족으로부터, 또는 일본으로부터 도전을 받기도 했지만, 하나의 질서로서 장기간에 걸쳐 존속한 것은 사실이다. 그 중심이 한족(漢族)이 아닌 북방족으로 바뀐 경우는 있었지만, 이 체제가 뒤엎어지거나 이를 대신하는 새로운 체제가 만들어진 적은 없다. 그것은 유럽 중세의 신성(神聖)로마제국체제에 견줄 만한 규모와 지속성을 가진 것이었다. 다만 신성로마제국체제에 비해 주체의 일방성이 훨씬 강한 차이가 있지만, 국제질서로서의 기능성은 비슷하였다.

조공책봉체제에서 중국은 중화(中華) 곧 문명의 중심을 표방하면서 중추 역할을 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18세기에 들어와 동아시아 각국이 모두 자국을 중화로 자처하는 변화가 일어났다. 한국은 청조(淸朝)의 여진족이 문화적으로 열등한 종족이었다고 해서 중국 한족이 이룬 중화의 문명은 이제 조선에서만 계승되고 있다고 하면서 조선(朝鮮) 중화(中華)를 내세웠다. 그리고 일본은 만세일계(萬世一系)의 천황가를 가지고 있는 나라야 말로 중화라고 했다.

월남(越南)도 19세기 초에 중화를 자처하면서 주위국들을 상대로 조공책봉체제를 만들었다. 흥미로운 것은 청조 자체도 중화의 해석을 새로이 시도한 점이다. 즉 옹정제(擁正帝, 1723~1736)는 문무(文武)가 온전하게 갖추어진 상태가 곧 중화라고 하여, 한족이 문덕(文德), 여진족이 무공(武公)으로 각각 역할을 분담하여 중화를 이룰 것을 촉구했다.

중화에 대한 각국의 해석을 차이가 있지만, 각국 중화주의는 기본적으로 전통적인 조공책봉체제가 무너지는 소리라고 할 수 있다. 적어도 의식상으로는 그랬다. 흥미로운 것은 그 시기가 바로 신성로마제국의 해체기와 오버랩된다는 점이다. 주지하듯이 신성로마제국은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해체의 방식에 대한 기본 합의를 보고, 19세기까지 때로는 폭주하듯이 때로는 느린 속도로 해체가 진행되었다.

양자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 것도 유의해야 한다. 신성로마제국은 해체의 방식으로 국제법을 만들어간 반면, 동아시아의 각국 중화주의는 국가 간의 개별의식, 독존의식이 높아져 가면서도 새로운 관계의 틀이나 룰을 만드는데 소극적이었다.

동아시아 3국은 이렇게 서로 자국 중화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가운데 19세기 초반부터 서양 열강국이란 손님들을 맞게 된다. 이 손님들은 기계문명의 위력, 국민국가로서의 단위성, 그리고 국제관계의 룰 등으로 무장한 힘센 존재였다. 이 손님들은 우세한 군사력을 배경으로 그들이 만든 국제법을 차등적으로 적용하면서 고압적으로 동아시아 국가들과 관계를 맺으려고 했다. 동아시아 각국은 전통적 조공책봉체제의 구심력도 발휘하지 못했고, 각국 중화주의의 어떤 새로운 룰도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이 손님들의 방식에 그냥 끌려가는 형세를 면치 못했다. 한 시기의 낙후성이 바싼 값을 치르기 시작하는 장면이었다.

문제의 심각성은 이 차이가 이후 오랫동안 개선되지 못한 점이다. 19세기 이래 동아시아 각국은 서양 국제법과 그 질서에 대해 계속 피동적이었다. 동아시아 자체의 전통적 국제관계의 기본정신을 찾아 서양세계가 만든 국제법에 반영하려거나, 법실행에서 동아시아적 관행을 법 규정으로 발전시키려는 노력같은 것이 전무하였다. 오로지 서양의 국제법을 이해, 추종하는데 급급했다.

동아시아 세계의 역사적 장구성에 비하면 너무나 피동적인 장면이 연속하는 상황이었다. 근현대 동아시아세계는 그만큼 국제관계 확립을 위한 노력에 능동적이지도 창의적이지도 못했다. 오늘날 빚어지고 있는 한일간, 한중간에 벌어지고 있는 역사분쟁은 이 미숙성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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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ye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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